1장. 문 앞에서 망설이다
1장. 문 앞에서 망설이다.

나는 평생을 무신론자도 신앙인도 아닌, 어딘가 그 사이에 존재하며 살아왔다. 특별히 종교를 부정하지도 않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좋은 삶’이란 제 몫 다하며 사는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50대 중반의 문턱에 들어섰을 무렵, 내 안에 묵은 침묵 같은 허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교회를 처음 찾은 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별다른 계기라기보다, 지인의 권유가 마침 마음에 스며든 순간이었다. 교회 앞에 서니 마음이 요동쳤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낯선 얼굴들, 그리고 ‘왜 여길 온 걸까’라는 어색한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공간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말없이 미소짓는 사람들, 가족의 안부를 묻듯 건네는 작은 인사들,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 속엔 설명하기 어려운 고요한 울림이 있었다. 설교는 생각보다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었다. 신앙이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일상 속의 작은 감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낯설게도 위로가 되었다.
사실 나는 ‘종교’라는 단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단어에는 경직됨과 경계심이 함께 얽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관계였다. 나와 세상, 나와 타인,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 그것은 곧 마음의 틈을 들여다보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끈으로 미래 세대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최재천 교수님의 호모사피엔스로서의 성장과 발달이 어쩌면 이 영적인 것을 통해 이토록 진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변화는 아주 천천히 시작되었다. 매주 교회에 앉아 한 시간 남짓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는 일. 기도라는 이름의 속삭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말들을 꺼내게 되는 순간들. 신을 믿는다는 건, 무엇보다도 내 삶에 의미를 묻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물음 앞에서 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변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아직도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삶의 풍경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내 마음속에 작은 틈이 생겼고, 그 안으로 조용한 빛 하나가 들어온 느낌이다. 그것만으로도 가끔은 충분하다고, 요즘의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교회는 어떤 곳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거기엔 나를 있는 그대로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노라고.”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