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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잇기

4장. 엄마와 나란히 앉은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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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올해로 여든셋이 되셨다. 작년부터 걷는 걸 조금 불편해하시고, 날씨가 흐리면 왼쪽 무릎이 더 욱씬거린다고 하셨다. 그러나 여전히 정갈한 손길로 밥을 짓고, 내 아이들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너네 엄마 어릴 적엔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엄마께 물었다.

 

엄마, 교회 한번 같이 갈래요?”

 

의외로 엄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내 기억 속에서 엄마는 신앙에 대해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기억의 저편, 아주 어린 시절 나는 선교원이라는 곳에 다녔다. 다섯 살, 여섯 살 무렵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좁은 책상에 앉아 예쁜 그림 성경책을 넘기고, 작은 손으로 눈을 감으며 기도를 흉내 냈었다.

당시 엄마는 착하게 살아야 해. 남 도우면서 살아야 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 말의 바탕엔 어쩌면 신앙에 대한 조용한 믿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후 엄마도, 나도, 삶에 휩쓸리듯 종교를 잊고 지냈다. 세상은 바쁘고, 마음은 늘 다른 곳을 향하고, 가족은 늘 지켜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했고, 그렇게 나는 어느덧 엄마의 나이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엄마와 나는 처음으로 교회의 문을 함께 넘었다.

 

예배당 문을 들어서는데, 엄마의 손이 살짝 내 팔을 붙잡았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의 낯섦일까, 아니면 오래전 기억의 조각이 갑자기 되살아난 걸까. 나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요동쳤다. 주일 예배당은 따뜻한 햇살과 조용한 찬송으로 가득했다. 자리를 안내받아 앉으면서 나는 엄마와 나란히 앉은 것만으로도 왠지 울컥했다.

 

설교가 시작되고, 목사님의 음성이 예배당을 가득 채울 즈음, 나는 문득 엄마의 손등을 바라봤다. 거칠고 주름진 손. 내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내 책가방을 매만지고, 수없이 많은 밥을 지으셨을 그 손이었다. 그 손이 지금은 내 팔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는 이 장면에서, 세월이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언제나 무언가를 챙기고, 무언가를 참고, 누군가를 걱정하던 사람. 스스로를 위한 삶은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사람. 그리고 그런 엄마를 모시는 지금의 나는, 언젠가 엄마가 내게 해줬던 모든 돌봄을 거꾸로 다시 되갚고 있는 딸이 되었다.

그날 나는 예배가 끝나기도 전,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울컥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인생이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었구나. 엄마가 아이였던 나를 데리고 교회를 향해 걸었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는 내가 노모의 발걸음을 잡아끌며 교회의 문을 열고 있다.

 

엄마와함께

 

엄마는 그날 예배를 마치고 나서 작게 웃으셨다.

 

좋더라. 마음이 좀 편안해졌어.”

 

그 짧은 말이 참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엄마는 요즘 약을 챙겨 드시는 일보다 더 잊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 바로 매주 교회에 가는 약속이다. 작은 핸드백에 헌금봉투를 조심스레 챙기며, 하얀 카디건을 꺼내 입는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묘한 감정이 밀려든다.

 

삶은 여전히 무상하다. 그 진실이 두렵기도 하지만, 이제는 조용히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어차피 모두 떠나는 존재이고, 남는 것은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손길뿐이다. 예전엔 그것이 무력한 감상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무상함조차도 아름다운 일시성으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요즘 더 자주 가족을 생각한다. 엄마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녀온 그날 이후, 기도의 첫 마디는 늘 엄마의 건강이다. 그리고 남편의 일, 아이들의 안녕, 내가 품고 있는 불안까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꺼내어 본다. 그 모든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하늘에 닿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예전의 나는 내 힘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용히 손을 모으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마음을 내어맡기고 있다는 감정을 배운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노모의 입술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신앙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것이라고.

 

이제 주일이면 나는 엄마의 옷장을 열어 가디건을 꺼내드리고, 발등을 조심스럽게 잡아 양말을 신겨드린다. 오래전 엄마가 나에게 해주셨던 그 손길이, 이제는 내 손 안에서 되살아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바꾼 채, 하나의 믿음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는다.

 

그 풍경이 내 삶에 아주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이라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길 위에 있었던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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